왜 자산운용사는 판매사에 있는 투자자 장부를 마음대로 볼 수 없을까?
자산운용사 등 발행 관련 기관이 계좌관리기관의 고객 장부를 자유롭게 볼 수 없는 이유는 발행기관을 불신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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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 #
이 글은 전자증권 및 금융정보 보호 제도의 일반적인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자료입니다. 개별 금융상품이나 구체적인 거래에 대한 법률 자문으로 볼 수 없습니다.
이해상충과 정보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원칙 #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라면 자기 펀드에 누가 얼마를 투자했는지 당연히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 금융시장의 구조는 그렇지 않습니다.
투자자가 증권사나 은행 등을 통해 펀드에 가입하면, 고객별 보유 내역은 해당 계좌를 관리하는 판매사 또는 계좌관리기관의 장부에 기록됩니다. 자산운용사는 펀드의 전체 설정액이나 판매사별 잔액 등 운용에 필요한 정보는 확인할 수 있지만, 개별 투자자의 이름과 계좌, 가입 및 환매 내역까지 항상 자유롭게 열람할 수는 없습니다.
왜 이런 구조를 만든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단순히 개인정보를 숨기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금융거래의 비밀을 보호하고, 기관 간 역할을 분리하며, 이해상충과 정보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자본시장 인프라의 기본 원칙을 따르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상품을 만드는 기관과 계좌를 관리하는 기관은 다르다 #
펀드 판매 구조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산운용사 : 펀드를 설계하고 자산을 운용
- 증권사·은행 등 판매사 : 투자자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고객계좌를 관리
- 신탁업자 : 펀드 재산을 보관 및 관리
- 전자등록기관과 계좌관리기관 : 증권의 권리관계와 보유 내역을 장부에 기록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산운용사가 투자자의 계좌를 직접 개설하거나 관리하는 기관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투자자는 자산운용사가 아니라 증권사나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죠. 따라서 고객의 이름, 계좌번호, 보유 수량 및 거래 내역이 기록된 장부에 대해서는 해당 계좌관리기관이 관리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를 제조업에 비유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자산운용사 : 상품 제조사
- 계좌관리기관 : 고객의 금고와 거래장부를 관리하는 기관
제조사는 자기 상품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팔렸는지는 알아야 하지만, 모든 구매자의 신원과 거래 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은 아닌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첫 번째 이유: 금융거래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서 #
고객계좌부에는 단순한 이름과 연락처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금융상품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언제 가입하거나 환매했는지 등 개인의 재산 상태와 투자 성향을 추정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는 일반적인 개인정보보다 더욱 민감하게 취급될 수 있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에서는 원칙적으로 명의인의 서면 요구나 동의 없이 금융거래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법 역시 수집한 개인정보를 당초 목적과 다른 용도로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제한하고 있죠.
계좌관리기관의 관점에서 자산운용사는 같은 금융산업에 속한 회사이더라도 고객계좌 관계에서는 별개의 제3자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산운용사가 해당 금융상품을 만들거나 운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고객의 금융거래 정보를 모두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이유: 정보의 남용과 이해상충을 막기 위해서 #
자산운용사가 투자자별 정보를 상시 확인할 수 있다면 여러 형태의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 고객에게만 별도의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 대규모 환매가 예상되는 투자자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환매를 만류하는 행위
- 판매사의 고객정보를 이용해 직접 마케팅을 하는 행위
- 특정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 대형 투자자와 일반 투자자를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행위
투자자 정보가 많아질수록 투자자 보호가 강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반대로 정보 우위를 이용한 차별이나 부당한 영향력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집니다.
따라서 제도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산운용사에 운용을 위해 필요한 정보는 제공하면서, 개별 고객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법적 목적이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제공하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이유: 장부의 신뢰성과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
금융상품의 전자등록 장부는 단순한 참고자료가 아닙니다. 장부에 기록된 내용은 누가 해당 증권의 권리자인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발행 관련 기관과 계좌관리기관이 동일한 고객 장부에 모두 접근하고 관여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장부 간 수량 불일치
- 거래 내역의 중복 또는 누락
- 오류 발생 시 책임소재 불분명
- 내부자에 의한 정보 변경 또는 유출 위험
- 여러 기관의 시스템 접근에 따른 보안 취약점 증가
전자증권 제도는 이러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장부별 작성 및 관리 주체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고객계좌부는 해당 고객계좌를 관리하는 계좌관리기관이 작성하고 관리합니다. 즉,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비밀 유지뿐 아니라 누가 원장을 관리하며 오류에 책임지는지를 명확히 하기 위한 장치 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산운용사는 투자자를 전혀 알 수 없을까? #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발행기관이나 자산운용사가 투자자 정보를 절대로 확인할 수 없도록 막아 놓은 것은 아닙니다. 배당, 이자 지급, 의결권 행사, 주주총회나 수익자총회 개최 등 권리관리를 위해 투자자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전자증권법은 일정한 기준일 등을 정한 경우 전자등록기관이 소유자의 성명 · 주소 · 보유 수량 등을 기록한 소유자명세 를 작성하는 절차를 두고 있습니다. 발행인은 이러한 공식 절차를 통해 권리 행사에 필요한 정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핵심은 정보 제공 여부보다 제공 방식과 범위 에 있는데요. 계좌관리기관의 고객 장부를 발행기관이 실시간으로 자유롭게 들여다보는 방식이 아니라, 법률상 필요성이 발생했을 때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필요한 범위의 정보를 제공받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투자자의 동의가 있거나 법원 · 과세관청 · 수사기관 등의 적법한 요구가 있는 경우에도 관련 법률이 정한 범위에서 정보가 제공될 수 있습니다.
운용에 필요한 통계정보와 고객 식별정보는 다르다 #
자산운용사가 펀드를 제대로 운용하려면 설정액, 환매 규모, 자금 유출입, 판매사별 잔액 등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개별 투자자를 식별하지 않더라도 운용에 필요한 집계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성격이 다른 두 정보가 있다고 합시다.
A 판매사를 통해 오늘 100억 원이 환매됐다.
이는 운용과 결제를 위해 필요한 정보입니다. 자산운용사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펀드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필요한 자산을 매각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다음 정보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금융거래 정보입니다.
김○○ 고객이 특정 계좌에서 30억 원을 환매했다.
이러한 개인 식별번호는 매우 제한적으로 자산운용사가 제공받을 수 있게 됩니다. 현행 제도는 가능한 한 개인 식별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면서 운용에 필요한 정보는 제공하는 최소 필요 정보 원칙 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정리 #
정리하면, 자산운용사 등 발행 관련 기관이 계좌관리기관의 고객 장부를 자유롭게 볼 수 없는 이유는 발행기관을 불신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 투자자의 금융거래 비밀 보호
- 개인정보의 목적 외 이용 방지
- 자산운용사와 판매사 간 역할 분리
- 대형 투자자 우대 등 이해상충 방지
- 고객정보를 이용한 부당한 영업 방지
- 전자등록 장부의 무결성과 책임소재 확보
결국 이 제도의 기본 원칙은 상품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제공하되, 개별 투자자의 금융정보는 정당한 목적과 법적 근거가 있을 때만 필요한 범위에서 제공한다 에서 시작합니다. 투자자 정보에 대한 제한은 금융회사의 업무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규제가 아니라, 금융거래의 비밀을 보호하고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에 가깝습니다.